학술 에세이 [인간파트]
개성을 찾는 인간 : Homo-proprietas [Personal color와 Running shoes 사례를 통한 개성 찾기]

* '호모프로프리에타스' 는 제가 만든 어휘입니다.

 

1. 당신은 개성 있는 사람인가요?

1-1. 무엇이 개성적인가?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_ 김춘수,

 

현대와 같은 경쟁이 치열한 사회에 사는 많은 사람은 개성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학교에서 친구를 사귈 때도, 취업을 위해 면접을 볼 때도, 연애와 결혼을 할 때도, 그 외 모든 순간에서도 말이다. 어떤 사람들은 본인의 개성을 잘 알고 삶에 활기를 더욱 불어넣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개성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며 자신을 괴롭히기도 하고, 개성에 대한 고민 없이 그저 살아가기도 한다. 그렇다면 개성이란 무엇이며,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개성을 찾을 수 있을까? 그 의미를 남들과는 다른 독특함, 특별함이라고 오인하는 뭍 사람들에게 필자는 더욱 적극적으로 접근해보자고 제안하고 싶다. 김춘수 시인의 에서 볼 수 있듯이, 나의 빛깔향기’, 또 그것에 알맞은 것. 개인을 명명할 수 있는, 개인이 지닌 고유성으로 돌아가자고 말이다.

사람에겐 누구나 그 사람이기 때문에 갖는 고유한 성질, 정체성이 있다. 개성을 찾는다는 것은 남들과는 다른 독특함을 개발하고 특별함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육체와 정신 등이 결합된 존재로서 자신의 진정한 내-외면을 찾아간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다른 이들과 차별화되려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내가 지닌 고유한 정체성을 찾아 내가 나인 것에 만족하고 내게 적합한 삶을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1-2. 나를 찾을 수 있는 시대

아니 말은 번지르르한데, 나의 고유성을 대체 어떻게 찾으라는 거야? 아니, 찾을 순 있는건가..?’라고 생각한 당신! 걱정하지 마라. 지금은 충분히 나를 찾을 수 있는 시대이다. 본 글에서 다룰 개성은 신체적개성으로, 신체적 고유성과 같은 의미이다. 이는 본인에게 가장 적합하고 어울리는 것을 파악하고 인지할 줄 아는 것을 말하며 구체적으로는 신체 조건에 꼭 맞은 옷부터 화장품 색조, 신발이나 스포츠 제품, 머리카락 형태와 색, 장신구에 이르기까지 개인의 신체에 어울리는 모든 것을 말한다. 개인의 신체적 고유성에 어울리는 제품을 사용했을 때, 그의 고유성은 더욱 빛을 발한다.

산업구조 및 과학기술의 변화는 신체적 개성의 실현을 가능케 만들었다. 과거의 획일화된 상품군에서 선택의 폭이 넓어진 다양한 제품들과 개인 맞춤형 상품이 생겨났고, 한정적인 정보 공유에서 대량의 일상적이고 개인적인 정보 공유가 가능해졌다. 이처럼 현대 사회는 나에게 적합한 제품을 손쉽게 구할 수 있는, 나를 찾을 수 있는 시대이다. 그러나 모순적으로 나를 찾기 어려운시대이기도 하다. 다양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내놓은 제품과 선택지가 너무 많, 본인의 고유성을 파악하고 있지 못한다면 고유성을 빛내기는커녕 오히려 해칠 수 있게 된 것이다.

 

2. 개성을 찾는 인간, 호모 프로프리에타스

2-1-1. 무지에서 나오는 무관심

혹시 옷이 예뻐서 샀는데 막상 입어보니 색상이나 재질이 본인과는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 들어 그대로 옷장에 보관해둔 경험이 있는가? 만약 그렇지 않더라도, 어떤 종류의 옷을 입었을 때 매우 예쁜데 어떤 종류의 옷을 입었을 때는 은근히 별로였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옷은 많은데 정작 입을 옷이 없어!’라는 웃픈 이야기는 사실, 본인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뚜렷한 기준 없이 옷을 구매했기 때문에 일어난 현상이다. 이는 비단, 옷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다. 여성이라면 다른 여성이 사용했을 때 너무 예뻐 구매한 화장품이 본인에겐 전혀 안 어울렸던 경험이 있을 것이고, 남성이라면 편하다고 소문난 유명 브랜드의 런닝화, 축구화가 자신에겐 불편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처럼 다수의 사람은 다양한 부분에서 본인의 신체적 고유성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살아가며, 그러한 개념 자체에 대해 무지하다. 당신은 정말 를 알고 있는가?

삶의 영위에 있어 본인의 개성을 찾아가는 과정은 중요하기에, 필자는 여기서 개성을 새롭게 정의하고자 한다. 개성은 특별한 무언가가 아닌 개인이 가진 고유성이다. 그리고 이를 찾으려 노력하는 사람을 Homo Propríĕtas : 호모 프로프리에타스라 명명하겠다. 그리고 그 반대되는 개념으로, 고유성에 무지하고 무관심한 사람을 Homo rúdĭtas : 호모 루디타스라 정의하겠다. 호모 프로프리에타스란 라틴어로 사람을 뜻하는 Homo와 고유성, 개성, 특질, 특색을 뜻하는 Propríĕtas의 합성어이며, 호모 루디타스는 사람을 뜻하는 Homo와 무식, 무지, 경험 없음을 뜻하는 rúdĭtas의 합성어이다. 우리는 다양한, 다각도의 노력과 시간 투자, 이해를 통해 호모 루디타스에서 나아가 호모 프로프리에타스가 되어야 할 것이다.

개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돕기 위해 이제부터 개성을 알아보는 예시 두 가지를 설명해주려 하니 잘 듣고 당신만의 고유성을 찾아보도록!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색감, 재질, 기능이 무엇인지를 안다면 당신의 옷장에는 입고 싶은 옷이 넘치게 될 테니 말이다.

 

2-1-2. 나를 찾다, Personal Color Personal color란 무엇인가?

먼저 개인의 고유한 성질 중 하나인 Personal Color를 알아보자. 퍼스널 컬러란 개인의 피부색에 어울리는 색상을 일컫는다. 옷이나 머리카락, 장신구, 화장품의 색상을 본인의 퍼스널 컬러에 알맞게 바꾼다면 쉽고 간단하게 본연의 아름다움을 찾아낼 수 있다. 퍼스널 컬러의 효과는 강력하며 비교를 통해 즉각적으로 알 수 있기 때문에 최근 몇 년동안 핫한 키워드였다. 그러나 다수의 사람은 퍼스널 컬러라는 개념이 존재한다는 것만 알고 있을 뿐 크게 신경 쓰지 않아 본인의 퍼스널 컬러를 모른 채 살아가고 있다. 심지어 퍼스널 컬러를 상술로 치부하는 사람도 있다.

위의 그림은 퍼스널 컬러의 예시를 잘드러내 준다.

퍼스널 컬러는 크게 봄 웜톤’. ‘여름 쿨톤’, ‘가을 웜톤’. ‘겨울 쿨톤의 네 종류로 나뉘며, 각 분류 하에 페일, 라이트, 브라이트, 비비드, 딥 등의 다양한 형태로 다시금 나뉜다. 개인의 피부색에 맞는 톤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신체에 바르거나 걸치는 모든 제품의 색상을 동일 계열의 톤으로 맞추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하다. 다른 부분이 모두 웜한 톤으로 맞추어져 있다고 하더라도 한 부분이 쿨한 톤으로 되어있다면, 퍼스널 컬러의 효과는 크게 떨어지기 때문이다.

2-1-3. 나를 찾다, Personal Color 개성에 맞는 Personal color 찾기

당신의 퍼스널 컬러가 무엇일지 궁금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먼저 계절 별 톤은 어떤 특징이 있으며 어떻게 다른 것인지 살펴본 후, 정확히 퍼스널 컬러를 알수 있는 방법을 알아보도록 하자.

먼저 봄 웜톤이다. 만약 당신이 복숭아 빛의 밝고 노란 피부를 가졌으며, 밝은 갈색빛의 눈동자와 머릿결이 어울린다면 당신의 퍼스널 컬러는 봄 웜톤일 가능성이 크다. 봄 웜톤은 말 그대로 봄처럼 생기발랄하고 사랑스러운 분위기가 어울리는 사람으로, 봄의 색깔인 개나리색, 푸릇한 연두색, 벚꽃의 연 핑크색 등의 파스텔톤과 비비드한 색감이 잘 어울린다. 봄 웜톤의 사람은 쉬폰 소재의 가벼운 느낌의 옷이 잘 어울리며, 진하거나 어두운 느낌보다는 밝은 느낌의 헤어 컬러와 화장이 잘 어울린다. 연예인으로는 수지, 아이유, 설리, 이승기 등이 대표적인 봄 웜툰에 속한다.

다음으로 여름 쿨톤이다. 만약 당신이 핑크빛과 붉은빛이 감도는 피부를 가졌으며, 라벤더, 하늘색 등 노란기 없는 차가운 색이 잘 어울린다면 당신의 퍼스널 컬러는 여름 쿨톤일 가능성이 높다. 여름 쿨톤은 깔끔하고 시원하며 우아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사람으로, 모든 톤에 차갑고 회색 베이스가 섞인 색감에 찰떡이다. 여름 쿨톤의 사람은 차가운 파스텔 새틴 소재의 옷이 잘 어울리며, 옐로우 베이스의 헤어보다는 검은색이나 회색 헤어가 잘 어울린다. 연예인으로는 손예진, 김연아, 이영애, 이종석 등이 대표적인 여름 쿨톤에 속한다.

세 번째, ‘가을 웜톤이다. 만약 당신이 황색 빛이 도는 피부와 머리카락을 지녔으며 음영, 색조 화장이 잘 어울린다면 당신의 퍼스널 컬러는 가을 웜톤일 가능성이 크다. 가을 웜톤은 카키, 버건디 등 가을을 연상시키는 차분한 분위기의 사람으로, 황색을 지닌 따뜻한 계열의 머리카락과 색이 잘 어울린다. 완연한 가을, 노랗고 불그스름한 낙엽이 흩날리는 길에 트렌치코트를 입고 벤치에 앉아있는 사람을 생각해보라. 상상 속의 트렌치코트가 굉장히 잘 어울리는 사람이 바로 가을 웜톤이라고 할 수 있다. 가을 웜톤의 사람은 성숙하고 지적이며 섹시한 이미지로, 어울리는 색깔 파레트가 넓어 색조 깡패로 불리기도 한다. 이효리, 전지현, 원빈이 대표적인 가을 웜톤에 속한다.

마지막으로 겨울 쿨톤이다. 만약 당신이 푸른빛이 도는 어두운 검정 머리와 눈동자가 잘 어울리며 흰 붉은 빛의 피부를 가졌다면 당신의 퍼스널 컬러는 겨울 쿨톤일 가능성이 높다. 겨울 쿨톤은 파랑, 흰색, 검정색이 잘 어울리는 묘한 뱀파이어 같은 시크하고 모던한 이미지의 사람으로, 블랙 헤어에 레드립, 핫핑크, 버건디와 같은 색감이 잘 어울린다. 겨울 쿨톤은 사계절 컬러중 한국인에게 가장 보기 힘든 유형으로, 연예인으로는 현아, 김혜수, 아이린, 차승원, 이수혁이 겨울 쿨톤에 속한다.

 

2-1-4. 나를 찾다, Personal Color Personal Color 인지 전후의 사례 비교

봄 웜톤인 수지가 본인의 Personal 컬러에 맞게 메이크업을 하지 않았을 때와 했을 때의 비교 사진이다. 봄 웜톤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앞서 설명했듯이 검정색 보다는 밝은 느낌의 헤어 컬러와 화장이 어울린다. 진한 스모키 메이크업은 봄 웜톤의 사람에게는 굉장히 어색하다.

여름 쿨톤인 손예진이 본인의 Personal 컬러에 맞게 메이크업을 하지 않았을때와 했을 때의 비교사진이다. 봄 웜톤은 까만 머리색이 어울리지 않았지만, 여름 쿨톤은 까만 머리색을 했을때 굉장히 고급진 느낌을 주는 것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가을 웜톤인 한예슬이 본인의 Personal 컬러에 맞게 메이크업을 하지 않았을 때와 했을 때의 비교사진이다. 여름 쿨톤에게 어울렸던 블루 베이스의 화장과 흑발은 가을 웜톤에겐 독이다. 오히려 헤어와 화장에 갈색빛을 넣어 밝게 해주면 성숙하고 지적인 느낌이 물씬 살게 된다.

겨울 쿨톤인 현아가 본인의 Personal 컬러에 맞게 메이크업을 하지 않았을 때와 했을 때의 비교 사진이다. 겨울 쿨톤에게 노란끼 도는 오렌지 베이스의 메이크업과 헤어 컬러는 촌스러운 느낌을 준다. 흑발과 검정 의상, 레드 립을 발라줬을 때 오히려 겨울 쿨톤의 깨끗함이 빛나게 된다. 봄 웜톤인 수지가 본인의 Personal 컬러에 맞게 메이크업을 하지 않았을 때와 했을 때의 비교 사진이다. 봄 웜톤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앞서 설명했듯이 검정색 보다는 밝은 느낌의 헤어 컬러와 화장이 어울린다. 진한 스모키 메이크업은 봄 웜톤의 사람에게는 굉장히 어색하다.

 

2-2-1. 나를 찾다, Running Shoes 사이즈는 발 개성의 전부가 아니다

잠시 이 글을 보고 있는 눈을 아래로 내려 당신의 두 발로 시선을 옮겨보라. 그리고 이와 같은 질문에 답해보라.

당신의 발은 어떤 개성을 갖고 있나요?’, ‘당신의 개성에 꼭 맞는 신발은 어떤 신발인가요?’

이 질문에 발 사이즈만을 대답한 사람은 개성을 아는 초수, ‘호모 루디타스’, 발 사이즈와 함께 칼발, 평발, 발볼의 폭 등을 답한 사람은 중수, 기본적인 내용을 포함해 ()내전, 중립, ()외전 등을 말한 사람은 고수, ‘호모 프로프리에타스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본인의 족형에 적합한 신발, 런닝화를 신는 것은 달리기 선수뿐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중요하다. 족형에 맞지 않는 신발을 신는 것은 사람의 발과 발목, 무릎과 고 관절 등의 신체 건강에 장기적인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만일 당신이 특별한 운동을 하지 않는데도 발바닥과 발목이 자주 아프거나, 신발 밑창의 한쪽 부위만 빨리 닳는다면 당신은 적합하지 않은 신발을 신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하루빨리 본인의 족형에 맞는 신발을 찾아 신어야 한다.

과내전 또는 외전이란 무엇인가? 사람의 신체는 달릴 때 발이 땅에 착지함과 동시에 발목을 적당히 회전시킴으로써 그 충격을 흡수하고 원활히 달리게 한다. 이때 발목이 안쪽으로 과하게 회전하는 것을 과 내전이라 하며, 발목이 뻣뻣해 회전하지 못하고 발목의 바깥쪽으로 꺾이거나 충격을 주는 것을 외전이라고 한다. 최적화된 발을 가진 사람은 중립형 족형으로, 이들은 충격흡수에 딱 필요한 만큼만 발목을 회전시켜 발의 피로를 줄인다. 중립형 족형의 사람들은 시중에 판매되는 대부분의 신발을 신어도 무관하나, 과내전/외전 형의 사람들은 본인의 족형을 알고 적합한 신발을 찾아 신는 것이 중요하다.

 

2-2-2. 나를 찾다, Running Shoes 개성에 맞는 Running shoes 선택하기

한국인들의 족형은 일반적으로 발 볼이 넓고, 살짝 평발이며, 약간의 과 내전을 가지고 있다. 과내전/중립/외전을 이해했다면 이제 자신의 발이 과 내전인지 외전인지, 아니면 축복받은 중립형인지 알아보도록 하자. 개인의 고유 족형은 아치 모양, 신발 마모 부위, 뛰는 자세의 관찰을 통해 알 수 있다.

1. 아치 모양을 통해 알아보기

발바닥에는 위로 움푹 들어간 아치가 있는데, 아치의 깊이가 깊을수록(높을수록) 과 외전 족형일 확률이 높으며 낮을수록 과 내전 족형일 확률이 높다. 아치 모양은 다음과 같은 간단한 2가지 테스트를 통해 알 수 있다.

먼저 핑거 테스트 방법이다. 똑바로 서서 손가락 3개를 발바닥의 아치 속으로 넣어보라. 손가락이 안으로 쑥 다 들어간다면 아치가 높아 과 외전일 확률이 높으며, 반 정도 들어가면 중립에서 살짝 과 내전, 손가락이 거의 들어가지 않는다면 평발로서 심한 과 내전이라고 보면 된다.

다음으로 발바닥 찍기 방법이다. 종이를 바닥에 깔고, 발바닥을 물에 적시거나 물감으로 칠한 후 종이를 밟아보라. 그 후 종이에 찍힌 자신의 발 모양을 확인한다. 가장 왼쪽 그림이 아치가 낮은 평발로서 과 내전일 확률이 높으며, 가장 오른쪽 그림이 아치가 높은 요족으로 과 외전일 확률이 높다. 중앙은 중립형이다.

2. 신발 마보 부위를 통해 알아보기

집에 있는 신발들, 특히 런닝화의 밑창을 확인해보라. 족형을 떠나서, 신발은 신을수록 뒷굽이 가장 많이 닳고 다음으로 앞굽이 닳는다. 그러나 과 내전이냐, 외전이냐에 따라 마모의 부위가 조금씩 달라진다. 그림의 색칠된 부분은 신발의 마모 부위를 나타내며, 파란색이 과내전, 분홍색이 중립형, 초록색이 외전 족형의 마모 부위이다.

간혹 신발의 뒷 쪽(아래쪽) 마모만 확인하여 과 내전을 외전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으나, 뒷 쪽보다는 앞쪽 마모 부위로 확인하는 게 정확하다. , 앞쪽 마모 부위가 안쪽이라면 과내전이며, 앞쪽 마모 부위가 바깥쪽이라면 외전형이라는 것이다.

3. 뛰는 자세를 통해 알아보기

아치 모양과 신발 마모 부위만 확인하여도 어느 정도 자신이 과 내전인지, 외전인지를 알 수 있으나 더 정확하게 알고 싶다면 뛰는 자세를 뒤에서 녹화하는 방법도 있다.

녹화된 영상을 슬로우 모션으로 보면 본인 발의 어느 부위가 지면에 먼저 닿고 어느 부위가 마지막에 떠나는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왼발의 모션을 나타낸 그림을 참고하자. -왼쪽의 경우가 외전 발이며, 뒷굽은 바깥쪽으로 착지하고 앞굽은 새끼발가락 쪽에 체중을 실어 딛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오른쪽의 경우가 과 내전이며 착지는 과 외전과 같이 바깥쪽으로 하지만, 앞 굽은 엄지 발가락쪽에 체중을 싣고 딛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지면에 많이 닿는 부위가 마모가 잘 발생하는 부위이기 때문에, 2번과 동일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cf. 발 유형 별 조심해야 할 부상

[외전] 족저근막염, 정강이 부목, 발목염좌_ 왼쪽사진

[중립] 효과적 충격흡수로 인해 부상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음_중간사진

[내전] 경골 부목, 족저근막염, 건막류, 발뒤꿈치 통증_오른쪽사진

 

2-2-4. 나를 찾다, Running Shoes 개성에 맞는 런닝화 선별하기

생에 처음으로 자신 발의 개성을 알게 된 당신. 호모 프로프리에타스에 한 걸음 다가갔음을 느꼈다. 기쁜 마음으로 새 런닝화를 사기 위해 쇼핑을 하러 갔으나... 당신의 앞에 수많은 브랜드의 수많은 런닝화가 등장했다! 어떤 런닝화를 구매해야 할지 난감할 당신. 족형은 알았다. 그렇다면 좋은 런닝화는 어떻게 골라야 할까?

런닝화의 기본 구성은 크게 어퍼, 미드솔, 아웃솔로 나눌 수 있고, 런닝화 선택 시 체크해야할 요소로는 어퍼의 소재 및 착용감, 쿠션, 반발력, 안정감, 아웃솔의 유연성 및 내구성, 힐 카운터, 무게, 내구성, 힐 드롭 등이 있다. 각 부분마다 중요한 소재 또는 기능이 장착되어 있으며 어떤 재질을 쓰느냐, 어떤 기능을 우선하느냐에 따라 같은 부위더라도 그 쓰임새가 달라진다. 앞서 나열한 요소들은 모두 중요하지만, 이번에는 족형에 있어 특히 알아두면 좋을 부분들과 일반인들이 흔히 잘못 알고 있는 정보에 대해서만 집중적으로 다뤄보겠다.

1. 미드솔

미드솔은 어퍼와 아웃솔 사이에 있는 중창으로 크게 쿠션, 지지대, 반발력의 세 가지 역할을 한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나이키 에어, 아식스 젤, 미즈노 웨이브 플레이트와 같은 푹신한 쿠션이 있는 런닝화를 최고로 여기지만, 쿠션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바로 반발력이다. 쿠션만 있고 반발력이 없는 신발을 신는다면 발바닥은 멀쩡하겠지만 피로가 빨리 찾아오게 된다. 반발력이 없기 때문에 발을 들 때마다 온전한 힘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너무 푹신한 쿠션이 있는 신발보다는 조금 딱딱하더라도 반발력 있는 신발을 선택하여야 한다.

2. 아치 서포트

평발을 가진 사람은 오래 달리지 못하며 심지어 군 면제 대상도 된다. 그 이유는 걷거나 뛸 때마다 아치가 무너져 발바닥에 극심한 통증을 주기 때문이다. 이것이 족저근막염이다. 만일 당신이 평발을 가졌거나 족저근막염이 있거나, 과내전 족형이라면 아치 서포트 기능이 필요하다. 그러나 아치 서포트에 사용된 지지대는 신발의 무게를 증가시키기 때문에 중립/외전 족형의 사람에게는 다소 불필요한 요소이다.

3. 아웃솔

러닝화 아웃솔의 여러 기능 중에는 유연성안정감이 있는데, 아웃솔이 유연하면 더욱 자연스러운 발 구르기가 가능하고 편안한 착용감을 주지만 지나치게 유연성만 강조하고 안정감을 무시한 러닝화는 되도록 구매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특히 아웃솔 중앙의 안정감을 잡아주는 장치는 활동 시 신발의 좌우 뒤틀림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는데, 이는 중립과 외전 러너에도 꼭 필요한 장치이다.

 

3. 글을 마치며

3-1. 호모 프로프리에타스로 살아간다는 것

호모 프로프리에타스의 의미는 주체적인 삶을 염원하는 사람과 맞닿아있다. 나만의 고유성을 찾으려 노력하는 과정과 그 결과는 주체적이며 자유로운 삶을 영위하기 위한 과정의 일부이다. 유행을 따라가기보다는 유행 속 나의 고유성을 찾는 것, 남들이 하라는 것을 하기보다는 스스로 판단하며 쟁취하는 것, 스스로를 충분히 이해하며 자신을 존중할 줄 아는 것. 이 모든 것은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는 사소한 것으로부터 시작되고, 오늘 우리는 그 열쇠를 쥐었다. 주체적인 삶의 열쇠. 그것이 호모 프로프리에타스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라고 생각한다.

고대 그리스, 델피 아폴론 신전의 한 기둥에는 이런 말이 써있었습니다.

네 자신을 알라

이 문장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있죠. 바로 유명한 철학자인 소크라테스입니다. 세간에는 이 문장이 소크라테스가 만든 격언이라 알려져있지만, 사실은 아폴론 신전의 기둥에 쓰여져 있던 문구가 그 유래입니다. 소크라테스가 이 문구를 해석하길, “자기 자신이 무지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자신을 알기 위해 힘써야 한다고 하였지요. 저도 그 의미에 공감합니다만, 델피 신전에 문구를 적은 원작자의 의도는 조금 달랐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자기 자신이 무지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자기 자신을 알기 위해 힘써라라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인간이 신 아래 무지하며 무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신을 숭배하고 경배하라는 의미에서 그 문구를 써넣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아무래도, 신전의 한 기둥에 써져있었으니 말입니다.

 

<오이디푸스 왕> 에도 이러한 의미를 내포하는 문구가 있습니다. 내용의 후반부에서, 요카스터가 오이디푸스에게 하는 말인데요,

“God keep you from the knowledge of who you are”

신이시여, 오이디푸스 그가 그의 정체성을 모르게 해주세요, 라는 의미입니다. 요카스터가 이런 말을 하는 까닭은, 오이디푸스가 바로 자신의 아버지, 전대 테베의 왕 라이오스의 살인자이며, 어머니(요카스터 자신)와 근친상간을 한 비극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눈치챘기 때문입니다. 오이디푸스는 그럼에도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나서죠. 요카스터가 한 말, 그가 그의 정체성을 모르게 해달라는 말을 한 문장으로 줄이면, “너 자신을 모르게 하라가 될 수 있겠습니다. 이 말, 언뜻 너 자신을 알라와 비슷해 보이지 않나요? 표면적으로는, ‘모르게 하라알라는 반대되는 말이라 생각될 수 있지만, 신전에 적힌 의미에서의 너 자신을 알라의 말과는 그 의미가 비슷해 보입니다. 왜냐하면, 신전에서 신께 경배하라. 인간인 네 주제를 알라. 더 이상 신의 영역을 넘보지 말라의 의미와, 요카스터가 말한 진실을 모른 채 살아라. 네 자신이 누군지 알려 하지 말고, 그저 편하게 살아라의 의미가 같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두 문장은 정반대의 의미를 갖고있기도 합니다. 소크라테스가 말한, “네 자신을 알라의 의미라면 말이죠. 소크라테스는 네 자신의 무지를 알라고 하였지만, 그건 무지함에 안주하며 살라는 의미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소크라테스는, 네 자신을 알기위해 노력하라고 말하죠. 소크라테스에게 무지란 더 뛰어난 를 위한 것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오이디푸스 왕 또한 더 뛰어난 를 추구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요카스터는 불편한 진실을 회피하고, 거짓된 세상 속에 안주하며 살아가길 권하지만, 오이디푸스는 그를 거부하며 불편한 진실을 향해 거침없이 발을 내딛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비단 이 장면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죠. 그는 작품 속에서 늘 불편한 진실 앞에 두려워하지 않고, 진실을 찾아 나섭니다. 제 정체성을 찾아 나섭니다. 그는 그러한 인간이었기에, 스핑크스가 묻는 네 정체성이 무엇이냐, 너는 어디로 가는가에 대한 질문에 답을 할 수 있었고, 그는 그러한 인간이었기에, 인간들의 영웅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그러한 인간이었기에 <오이디푸스 왕>이라는 작품은 진정한 비극이 될 수 있었습니다.

 

이쯤 되면 오이디푸스와, 그의 정체성에 대한 얘기를 더 안할 수 없죠. <오이디푸스 왕>은 나 자신의 정체성을 알아가는 서사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앞서 잠깐 언급했듯이, 오이디푸스는 스핑크스의 자신의 정체성을 묻는 질문에 대답을 했습니다. 이는 오이디푸스가 평소에도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자신이 나아갈 길에 대해 꾸준히 고민해왔다는 것을 내포할 것입니다. 그렇기에 편히 살아갈 수 있는 기회가 여러 번 찾아왔음에도, 스스로 왕의 자리를 버리고, 두 눈을 찌르고.. 인생 전체를 희생해가며 진실을 찾겠다 한 것이겠죠. 그런데, 슬슬 이러한 의문이 듭니다. 내가 내 아빠의 살해자이며, 그로 인해 내 나라에서 왕위를 놓고 쫓겨나야 하며, 근친상간까지 저질렀다는 끔찍한 진실이 있다. 그리고 이 끔찍한 진실을 피할 기회가 여러 번 있었다? 그렇다면 이 진실을 알기 전에, 인정하기 전에 회피하고 지금의 생활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 요카스터의 제안대로 하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하는 의문입니다. 그래요, 분명 <오이디푸스 왕>을 읽으며, ‘왜 저렇게 자신의 정체성에 집착하지? 그냥 넘어가면 편할 것을. 매번 왜 이렇게 고집부리는거야!’ 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그런 생각을 하는 독자들에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진실을 회피하고 현실에 안주하며 살아가는게, 진정한 내 인생을 살아가는 걸까요?

 

이 의문에 대해, 누구나 한번쯤 들어봤을 명작, 영화 트루먼쇼를 예로 들 수 있겠습니다. 영화 트루먼쇼의 주인공은, 인기 있는 Tv 프로그램에 24시간, 매일 출근하는 남자입니다. 24시간, 매일 출근한다는 의미는 사생활이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죠. 그리고 그는 이 사실을 모릅니다. 자신의 삶이 24시간 남들에게 공개되어 있다는 것을요. 그는 그를 위해 준비된 마을 모양의 세트장에서, Tv에 출연한다는 사실을 아는 연기자들(그가 아는 모든 지인들이죠)에 둘러쌓여,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평생을 살아왔습니다. 그래도 그는 마을에서 행복했습니다. 그는 아무것도 모르는데다, 그가 주인공인걸요! 삶의 어느순간, 그는 불편한 진실에 대한 낌새를 눈치채고, 진실을 파헤쳐 갑니다. 그리고 영화의 막바지에 치달아, 진실을 마주한 그가 세트장을 탈출하며 영화는 끝이 나게 되지요. 이 상황, 어딘가 오이디푸스의 얘기와 닮아있지 않나요? 여러분이 트루먼쇼의 주인공이라면 어떻습니까?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고 나만을 위한 세트장 속에서 살아갈 것입니까? 아니면, 앞으로 어떤 인생이 날 기다릴지는 모르지만, 진실을 마주하고 짜여진 세트장, 날 가두는 새장 속에서 탈출할 것입니까? 오이디푸스는 탈출하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저 또한 오이디푸스와 함께하고 싶습니다. 두렵고 힘들더라도. 진실을 마주하고, 내 삶 안에 만져지는 나라는 존재를 느끼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그것이 바로 진정한 행복이며, 인간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고귀한 가치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에 와서는 그저 편안한 삶을 추구하며 양심에 가책이 있어도 나의 이익만을 좇는 사람이 많아졌지요. 저는 그러한 사람들에게 <오이디푸스 왕>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오이디푸스 왕은 많은사람들에게 나 자신에 대해, 내가 걸어온 길에 대해, 내가 걸어갈 길에 대해 생각할 계기를 줄 것입니다. 오이디푸스 왕의 삶은 비참했지만, 분명 가치 있는 삶이었습니다. 누구나 회피하고 싫어할 것을 제대로 바라보며, 진실로 달려갈 수 있는 용기가 있는 삶. 마지막까지도 신을 포함한 타인에게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삶은 자신이 결정하는 삶. 현명하고 현명한 오이디푸스. 저는 오이디푸스를 영웅이라 생각합니다.

 

2021. 07

김다예

학 기술의 눈부신 발전은 전쟁 무기의 엄청난 기능 향상으로 이어졌다. 과거 히로시마에 떨어졌던 원자 폭탄의 위력만 봐도 충분히 그 효과를 실감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그 원자 폭탄의 2,500배 가량의 위력을 가진 핵 폭탄을 만들 수 있다고 하니 가히 그 효과를 실감하지 못할 수준이다. 통칭 '수소폭탄' 이라고 불리는 이 폭탄이 사용될 경우 도시 일대 사람들이 즉사할것은 물론, 폭발 시 방출된 방사능 입자들은 그 후로 쭉 지구상 대부분의 인류를 괴롭힌다. 그렇게 서서히 신체 질병과 해체의 고통을 겪다, 결국엔 죽음을 맞게 된다. 지구 위 거의 모든 인간이 말이다.

러셀과 아인슈타인을 포함한 과학자들은 이러한 수소폭탄의 위력을 일찍이 잘 알고 있었다. 또, 전쟁 발발 시엔 이 위험한 폭탄이 틀림없이 사용될 것임도 알고 있었다. 그것은 곧 인류의 종말을 의미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러셀-아인슈타인 선언을 통해, 사람들을 한 국가에 소속된 국민, 한 집단에 소속된 시민에서 다시금 생물학적 종의 일원인 '인간'으로서의 마음가짐을 되살리려 하였다. 그들은 말한다. 우리는 모두가 같은 정도로 위험에 처해있다고. 또, 이런 위험이 서로간에 이해되기만 한다면, 우리는 집단적으로 그 위험을 피할 수 있는 희망이 생긴다고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논지에는 오류가 존재했다. 이러한 협약을 맺어봤자, 실제로 전쟁이 발발하게 되면 전쟁 참여국 모두 핵무기를 제주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핵무기를 제조한 국가와 그렇지 않은 국가가 있다면, 반드시 핵무기를 제조한 국가가 승리하게 될 것이니 말이다. 고로 이 협약은 궁극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사실 러셀과 아인슈타인을 포함한 과학자들도 이미 이러한 논지를 인지하고 있었다. 다만 그들은 이 협약을 함으로써 열핵무기가 폐기되며 각 국들의 긴장 완화나, 기습공격에 대한 두려움이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인류의 종말을 초래할 것인가? 아니면, 전쟁을 포기할 것인가. 전쟁의 폐지는 국가 주권을 제한하는 불편함을 요구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인간다움, '인류'라는 단어를 더욱 중요시해야만 한다. 인류라는 단어가 다소 막연해 보일 수 있지만, 이 단어 안에는 당신과, 당신이 사랑하는 가족들, 친구들, 그리고 후손들 까지도 포함되어 있음을 알아야 한다. 또 핵무기의 사용, 즉 전쟁의 발발은 개인 각자와 우리가 사랑하는 이들 모두를 고통스럽게 죽어가게 할 뿐임을 인지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세계의 정부들은 자국의 목적을 세계대전을 통해 실현할 수 없음을 공개적으로 확인 및 약속해두어야 하고, 국제적 세계적으로 발생하는 모든 분쟁 문제는 전쟁을 통해서가 아닌 평화적 해결방안을 강구해야만 한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존속할 수 있고, 행복, 지식, 지혜의 지속적 진보가 있을 수 있다.

결국, 우리는 '인간다움'을 기억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인류의 비참한 종말을 피할 수 없을테니 말이다.

19. 12

김다예

2차, 3차 산업혁명은 우리의 삶을 어떻게 바꿔놓았을까? 그리고 곧 닥쳐올 4차 산업혁명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기계가 인간을 대체하게 됨에 따라 실업률은 증가하게 될까? 이에 대한 세간의 견해는 어떻고, 우리는 어떤 판단을 해야 할까? 본 글에선 TFP (1인당 생산량)과 GDP (국내 총생산)을 지표로, 기술의 발전이 우리에게 미친 영향을 객관적으로 파악해보고, 우리는 어떤 시선으로 시대를 바라봐야 하는지를 제시해보려 한다.

2차 산업혁명은 우리의 생활 수준을 비약적으로 높였다. 안전, 편리함, 밝은 전등, 생명의 가치 등을 얻게 한 전례 없던 발명의 혜택은 GDF, TFP 수치로도 확연히 들어났다. 한편, 정보 통신 기술의 디지털 시대라고 불리는 3차 산업혁명은 2차 산업혁명에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전무후무한 컴퓨터 속도의 진화, 메모리 가격 하락에도 불구하고 생산성 성장률이 빨리 둔화 되어버린 이유는 명확하다. 초기 인터넷과 웹 혁명으로 받을 수 있는 혜택을 다 받고 난 후부터는 생산 방법의 변화(기술의 혁신)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생산성 향상의 저조는 지금까지도 쭉 이어져 오고 있다.

지금과 같은 양상에서 앞으로 닥칠 4차 산업혁명을 바라보는 견해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바로 '테크노 낙관론'과, '테크노 비관론'이다. 테크노 낙관론자들의 경우 우리는 기술 변화가 더딘 시기를 지나, 빠르게 변화할 미래로 넘어가는 ‘변곡점’에 위치해있다고 주장한다. 또, 직업이 사라지고 재 생산되는 속도보다 더 빠른 속도로 기술의 생산성이 증가할 것이기 때문에 인간의 대량 실업 사태가 초래될 것으로 전망한다. 반면 테크노 비관론자들은, 지난 10년 동안의 저조한 TFP 증가율을 근거로, 지금껏 거시 경제에 미친 로봇과 인공지능의 영향이 대단치 않았으므로 앞으로도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 주장한다. 또, 그렇기에 기술이 일자리를 몰아내는 것 보다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지는 속도가 더 빠를 것이니 오히려 실업률이 줄어들 것으로 전망한다.

이처럼 상반되는 두 견해 중, 우리는 어떤 판단을 더 신뢰해야 할까? 확실히 대답하기 어렵지만, 수치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대량 실업 사태가 발생할 것이라는 낙관론자들의 추측과는 달리, 우리 사회의 실업률은 점점 떨어지는 추세이다. 또 기계와 소프트웨어가 점점 인간을 대체하고 있음에도 노동 생산성이 폭등하기는커녕 답보상태를 면하지 못하고 있고, 현재의 경제는 다시 어느 정도 완전 고용 상태에 이른 수준이다. 따라서 지금으로선 비관론자들의 견해가 더 설득력있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이와 같은 논쟁 속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따로있다. 바로 버젓하고 안정적인 중간수준의 일자리가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는 점과, 지금의 느리고 점진적인 경제 성장은 지난 10년간의 실망스러운 생산성 성장, 그리고 30년간의 꾸준히 심화된 불평등이 결합 된 결과라는 것이다. 우리는 앞으로도 이에 대해 꾸준한 관심을 갖고, 경제 성장 저조의 원인을 정확히 파악해가며 주의를 기울여 나가야만 할 것이다.

19. 12

김다예

회적 통념과는 달리 우리나라를 비롯한 여러 국가의 불평등은 자본주의적인 시장 원리로부터 자연히 나타난 것이 아니다. 그 근본적인 원인은 정치에 있다. 언뜻 보면 크게 관련이 없어 보이는 두 분야지만, 시장경제가 정치적 불평등을 형성하고, 정치가 시장경제의 불평등을 확대 한다는 사실은 거의 명백하다. 그리하여 본 글에선 정치, 경제 분야의 불평등과 세계화에 따른 민주주의의 위기에 대해 논의해보려 한다.

‘시장경제’라는 게임이 있다. 이 게임의 규칙은 정치에 의해 결정된다. 게임의 시스템은 언뜻 공정해보이나, 사실 상위1%의 엘리트 집단에게 유리하도록 이미 기울어져 있다. 플레이 해보니, 지침서엔 분명 민주적인 ‘1인 1표’방식을 채택한다고 되어있으나 시뮬레이션을 해보니, 실상은 ‘1달러 1표’원칙에 의해 움직이는 것으로 보인다. 이 예시는 현대 사회의 현실을 잘 보여준다. 고위 자본가들은 정치 시스템을 농락하고, 공정치 못한 정치시스템은 가난한 시민들에게 정치적 환멸감을 불러일으킨다. 정치참여의 부재는 곧 정치와 경제시스템 모두를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이런 악순환 끝에, 세상은 점점 상위 1%의 엘리트들만을 위해 돌아가게 된다.

미국에서 일어난 ‘시민연대 대 연방 선거위원회’사건은 위의 상황을 절실히 보여준다. 이는 기업들의 선거 운동 비용(특정 정치인 지지비용)을 제한 할 수 없음을 대법원에서 인정한 사건인데, 이 결정은 기업과 노동조합들에게 ‘표현의 권리’를 누릴 수 있게 해주었다. 선거 운동을 충분한 금액으로 지지할 수 있게 된 고위 자본가들은 본인들에게 유리한 정치, 경제적 제도를 채택할만한 정치인을 막대한 자본으로 지지했다. 결국 시민들에게 ‘정치 참여의 기회’를 빼앗아간 것이다. 어떻게보면 뇌물수수와 다름없는 이 행위는 시민들에게 큰 정치적 환멸감을 줌과 동시에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를 잃게 하였다.

경제적 세계화가 진행됨에 따라 국내 정치가 해외로도 빠져나가고 있는 실정이다. 심각한 국가 부채 위기에 직면한 나라들이 자국의 정치를 세계국가연합에 맡기는 선택을 하는 것이다. 비단 개발도상국 뿐 아니라 선진국에서도 발생하는 이러한 상황은 자연히 시민을 경제문제에서 소외시킨다. 더욱이 금융 시장은 전체 국민의 행복을 추구하지 않는다. 오롯이 금융업자들의 행복을 도모하는 정치, 경제적 입장을 지지한다. 고로 금융의 자유화는 경제성장을 저하시키는 것을 피할 수 없으며, 나아가 불안정과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이러한 문제들이 확신되어가는 현 상황에서는, 민주주의와 국가자주권을 보호하며 동시에 완전한 세계화를 이룩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민주주의를 근간으로 한 정부들은 세계화를 위한 경제 시스템을 선택했고, 그 결과 민주주의의 손발이 묶이게 되었다. 물론 이에 대해 세계화를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며, 거쳐야만 하는 과정이라는 주장도 존재하고, 어느정도 옳은 말이지만, 이러한 태도는 정확한 현실 파악을 가로막는 장벽이다. 우리는 현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여 올바른 행동으로 옮길 필요가 있다. 사회의 상위 계층은 민주주의의 손발을 묶으려 하지만, 우리는 아직 민주주의를 확보할 수 있다. ‘1달러 1표’가 아닌, ‘1인 1표’의 민주주의 말이다. 더 이상 지체할 수는 없다. 이제 올바른 선택을 할 때이다.

19. 12

김다예

작하기 앞서, 본 글의 진행 순서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처음으로 우리는 <정당의 역할>에 대해 알아볼 것입니다. 그 후, <한국의 정당>은 과연 정당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지에 대해 알아볼 것이고, 그들의 만행으로 인한 <보수적 민주화>, <조숙한 민주주의>, <신자유주의적 민주주의로의 쇠태>를 알아볼 것입니다. 마지막으로는 이런 <한국 민주주의가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할까?>에 대해서 논의해본 후 간단한 느낀점과 함께 글을 마무리 짓도록 하겠습니다.

 

 

정당의 역할

우선 정당으로써 마땅히 수행해야 할 역할에 대해 논의해보고자 합니다. 정당은 사회적 갈등과 균열을 파악해 대변하고, 여러 논의를 대안으로 조직하는 일을 합니다. 사회적 갈등을 정치의 틀 안으로 가져와 진지하게 다뤄야 할 공동체 전체의 문제로 전환하여 의제로 만드는 것이 바로 정당의 역할입니다. 특정 정당의 이익에 도움이 되는 갈등만이 아닌, 갈등을 폭넓게 동원함으로써 다루는 갈등의 범위를 넓히는 역할을 할 때 비로소 정당이 민주주의에 기여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각 정당의 대안을 조직해 서로 경쟁하고 최선의 대안을 찾아가며, 궁극적으로 사회적 갈등을 완화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정치 기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민주주의를 채택한 정치 체계에선 정당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고, 따라서 정당이 제 역할을 하지 못 할 경우엔 민주주의는 위기에 처할 수밖에 없습니다. 당연히 그런 사회는 질적으로도 발전할 수 없겠죠?

 

한국의 정당

그렇다면 한국의 정당은 어떨까요? 안타깝게도 해방 후, 우리나라의 정당을 이끄는 정치 엘리트들은 광범위한 사회적 요구와 개혁 의제를 무시한 채 본인들의 이익 실현에만 몰두했습니다. 갈등을 사회화하긴커녕, 명백히 드러난 갈등을 무시하는 것은 기본이었고, 그저 자신들의 정치적 자산에 유리한 갈등만을 동원하고, 갈등을 사유화하며, 정치를 시민으로부터 분리했습니다. 이렇다 보니 한국 정치는 시민들의 공분이 대상이 되었고, 사회적 불만이 점점 쌓인 시민들 또한 애써 정치판을 무시해버리게 되었습니다. 최근에도 볼 수 있는 투표율의 극명한 하락은 정치 엘리트들에게 무시 받는 유권자들의 절망적인 항의라고 볼 수 있습니다. 투표를 하지 않는 방법을 통해 그들의 불만을 표출한 것입니다. 이런 악순환 탓에 한국 정치 대표 체제인 정당 체제는 지속적인 저발전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보수적 민주화

다만 이렇게 대중의 참여가 결여된 상태에서도, 국가 형성 – 산업화 – 민주화에 이르기까지의 거시적인 사회 변화는 이루어졌습니다. 대중을 무시한 채 정당의 엘리트들끼리 정치 개혁을 이룬 것입니다. 이를 ‘수동 혁명’ 또는 ‘보수적 민주화’라고 부릅니다. 사실 대중을 무시하고 본인들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정치 세력은, 집권 말기에 엄청난 대중적 비판에 직면하며 새로운 정당이 등장하는 것이 보통의 경우입니다. 하지만 기존 정치 세력이 압도적으로 지배적인 우리나라의 경우엔 보수적 민주주의의 틀을 깨는 개혁적이고 진보적인 대안이 등장하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이러한 한국의 보수적 민주화의 틀을 잡는데 주요한 역할을 한 것은 바로 거대 언론입니다. 거대 언론은 정당의 편협한 갈등 범주 내의 무의미한 대안 재생산을 가능케 해주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정당과 언론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니 사회의 중요한 갈등과 균열이 표출되지 못한 채 억눌러지고 있고, 그 결과로 시민의 요구와 정치의 괴리감은 점점 커져만 가고 있습니다.

 

조숙한 민주주의

과거 재벌이 지배하는 경제구조, 거대한 국가 관료제 등의 특징을 갖고 있던 우리나라는 급격한 변화를 맞았습니다. 민주화를 맞게 된 것입니다. 다만, 이러한 권위주의가 충분한 준비없이 너무나 급진적으로 개혁된 탓에 온전히 민주화되었다고는 볼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이를 ‘조숙한 민주주의’라고 부릅니다. 조숙한 민주주의는 한국 사회에 구조화되어 정착되었고, 이는 보수 편향적 정당 체제를 만들었습니다. 지금도 어김없이 다수의 정당 엘리트들은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는 책임감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민주주의는 빈약한 정치적 수사에 불과해 보입니다. 이런 안락한 보수주의에 푹 빠져있는 한, 한국 정치는 더 이상 발전할 수 없을 것입니다.

신자유주의적 민주주의

민주화 이후, 새롭게 등장한 신자유주의 이념과 논리는 전 세계적인 영향력을 뻗쳤습니다. 우리나라 또한 사회경제정책 분야에서 더 신자유주의적이고 시장 근본주의적인 정책 노선을 추구하게 되었습니다. 다만 10년이 안 되는 짧은 기간 동안 정책 기조가 급진적으로 취해진 탓에,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등의 모든 구조가 불완전한 상태로 끝맺어지게 되었습니다. 또, 전 세계의 나라들은 각국의 경제 사정에 맞추어 적절히 변형시켜 신자유주의를 수용한 반면, 한국에선 그대로 강하게 밀어붙이는 경제 정책을 펼쳤습니다.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을 내세워 성장 지상주의를 강력히 기능하게끔 했으며, 민주주의와 병행 발전시킬 수 있었던 또 다른 가능성은 무시되었습니다.

 

신자유주의적 민주주의로의 쇠태

안타까운 점은 ‘신자유주의적 경제 정책의 외적 제약 안에서 한국의 사정에 맞게 변형 및 발전시켰으면 어땠을까’하는 점입니다. 신자유주의의 틀 안에서도 사회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정책적 보완을 할 수 있었을 테고, 다른 정책 분야에서도 현실에 상응하는 대안을 모색하고 발전시키는 것은 충분히 가능했을텐데 말입니다. 이와같이 신자유주의만을 밀어붙인 행위가 결국 실질적인 경제적 민주화의 실패로 이어졌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절차적 수준에서의 민주화 발전은 어느 정도 이루어졌지만, 사회경제적 수준에서의 민주화는 퇴보했습니다. 이렇게 성장 지상주의 정책을 최우선으로 놓는 동안, 한국의 시민들은 여러 개의 계층으로 분화되었습니다. 분명한 것은 오늘날 한국의 민주주의는 사회의 계급구조와 분열을 완화하는 체제로의 기능을 상실했다는 것입니다.

 

민주주의의 제 기능을 위해

그렇다면 한국의 민주주의가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선 어떠한 요소들이 필요할까요?

우선 서민층이나 노동이 정치과정 속으로 들어와야 합니다. 이들의 불만이 표출되며 공동체 모두와 다루는 갈등의 범위가 넓어지고, 그럼으로써 갈등이 해소되는 민주주의적 사회 통합을 이루어야 합니다. 정당은 사회적 갈등에 집중해 자신들을 위치시키고, 대중에게 맞는 정치적 대안들을 동원해야 합니다. 본인들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정당이 아닌, 제대로 된 이념과 정책을 추구하는 대중정당이 되어야 합니다. 또, 정치 공동체의 규모가 커질수록 갈등의 범위를 억압하고 무시하는 것으론 체제를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을 인지하고, 정당 체제의 보수적 폐쇄성에서 벗어나 다양한 사회적 요구를 반영할 수 있게끔 대표 체제를 개방해야 합니다. 만일 기존의 정당이 사회에 쌓여있는 갈등들을 무시할 경우, 쉽게 새로운 정당이 들어설 수 있어야 합니다. 정당 간의 경쟁이 의미를 띄게 되어야 정치가 언론에 종속되는 것도 지양될 것입니다. 이렇게 할 때 비로소 대중 주권이 실현될 수 있을 것이며, 민중에게 신뢰받는 정치, 민주주의라고 부를 수 있는 정치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

.

번 글을 준비하며 그동안 관심은 있으나 잘 알지 못했던 민주주의에 대해 알게 된 것 같아 기쁩니다. 사실 우리나라 정도면 민주주의가 참 잘 구현되어 있는 것 아닌가 하고 평소 생각했었는데, 자료를 찾으며 내가 아직 정치에 관심이 없긴 없었나보다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내 인생 살기에 바빠 정치와 경제는 뒷전으로 해두고 신문도 잘 읽지 않던 제가 새삼 부끄러웠습니다. 이제는 나도 방관만 하지 말자는 생각에 앞으로는 뉴스나 경제 신문 같은 것들도 종종 읽고, 또 간간히 내용도 요약해보려 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한 사회의 중심적 갈등들이 정당을 통해 전국화될 때가 바로 낡은 정치적 행태들이 변화하게 될 순간입니다.

 

2019.11

김다예

당신은 번식하고 싶은가?

몇십억 년 전, 자연스레 지구라는 세상에 태어난 생명체는 이상하게도 삶의 영속을 원했다. 특히 지능이 가장 뛰어났던 인간은 불멸에 대한 욕구가 더욱 강했다. 영혼이라는 개념을 만들어 신체가 죽어도 정신은 살아 사후세계에 간다고도 말하고, 불사의 몸을 얻기 위해 사방팔방 찾아다닌 자도 있으며, 영생불사를 믿고 시체를 미라로 만들어 보관하기도 했다. 불멸을 향한 이런 무의미한 일들 가운데 사실 가장 근접하게 도달한 방법이 ‘번식’이었다. 자신의 유전자를 대대손손 전달할 수 있는 번식을 통해 나름의 영생을 누리는 것이다. 그렇게 모든 생명체는 짧은 생에 만족하지 않고 자연스레 번식해갔다. 심지어는 번식을 위해 자신의 생존 가능성을 떨어뜨리는 형질을 발달시키기까지도 했다. 공작새의 화려한 깃털, 사슴의 커다란 뿔과 같이 스스로를 포식자들의 눈에 더 잘 띄게 하지만 이성에게 매력을 느끼게 하는 요소들 말이다. 진화론에선 이런 현상들을 근거로 들며 자연은 ‘개체’의 생존보다 종의 ‘번식’을 우선시한다고 말했다. 세상은 ‘나’보다 내 유전자가 다음 세대로 ‘전달’되는 것에 관심을 둔다는 것이다. 우리는 번식이 당연하고 중요한 세상에 살아가고 있지만 어떻게 보면 그저 유전자전달의 매개체로 철저히 이용당하고 있을 뿐이다. 개체로서의 ‘나’는 굳이 왜 살아가는 걸까? 지구상의 생명체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이렇게 번식만을 위해, 번식에 번식을 거듭하며 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이런 의문을 가진 나로서는 인류가 왜 불멸을 원하는지, 또 개체로서는 오래 살아있으려고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우린 아무 의미 없이 유전자를 물려주고 있다. 언젠가 인간 또한 공룡처럼 멸종할 순간이 올 테고, 수십억 년 후에 또 다른 생명체가 등장할 것이다. 곧 그 생명체도 번식을 거듭하다 멸종할 것은 당연하다. 결론적으로 그 반복은 전혀 쓸모가 없다. 멸종을 하던 안 하던 상관없이 어쨌거나 필요 없는 생태계의 연결고리이다.

플라톤의 ‘에로스의 기원과 성질’에서 사랑의 기능은 아름다움 안에서의 생식과 출산이고, 그것은 생물체 안에 들어있는 불사적인 것이라고 주장한다. 사랑을 통한 생식이야말로 죽어야 할 존재의 삶을 영원히 살게 하며 불멸의 것으로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극단적으로는 모든 생명체가 사랑을 보이는 것은 불멸성을 성취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하지만 사랑은 그런 것이 아니다. 불멸을 성취하기 위해 사랑을 한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궤변이다. 사랑을 통한 번식을 한다고 해서 절대 불멸을 얻을 수 없다. 나는 나일 뿐이다. 하물며 순간 이동장치(신체의 모든 생체정보를 나노 단위로 쪼개 복사한 후 다른 위치에 그 정보 그대로 다시 조합해 맞추는 것)도 이동한 개체를 정말 이동 전의 ‘나’라고 부를 수 있는가에 대한 논의가 있는데, 출산을 한다 해서 낳은 것을 과연 ‘나’의 영속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아쉽지만 죽는 순간 나라는 존재는 없어진다는 것은 인정해야 할 부분이다. 사랑을 불멸성을 얻기 위한 도구로 보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욕심이지만 번식을 위한 자연의 속임수에 불과하다는 것엔 동의한다. 사랑은 짝짓기 행위를 위한 심리적 속임수이다. 그러나 그것이 삶을 윤택하게 해주는, 삶에 있어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사랑 없는 삶은 가치가 없다. 그렇다면 속임수임을 알면서도 속아줄 수밖에 없다. 사실 이미 자연적으로 그런 본성을 갖고 태어난 이상 어쩔 수 없이 사랑할 수밖에 없기도 하지만.

나는 번식을 거부할 것이다. 나는 지금 이 순간만을 위해 존재하니까. 다만 사랑은 할 것이다. 유전자를 물려주기 위해서가 아닌 온전한 ‘나’의 행복을 위해서. 앞서 말했듯이 사랑은 무의미한 삶에 그나마의 의미를 부여해주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나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사랑이나 번식의 목적이 불멸이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영원할 수 없고 영원히 산다고 한들 의미가 없다. 그저 하나의 개체로서 사랑받고 예쁨받아 행복하면 그것으로 된 것 아닌가. 영원하지는 못하더라도 짧은 이 순간을 나의 행복으로 가득 채운, 나를 가장 우선시하는 삶을 누리고 싶다. 사실 앞서 왜 사는지 모르겠다는 둥 의미가 없다는 둥 삶에 회의적인 입장을 표한건 맞지만, 그렇다 해서 굳이 살고 싶지 않다며 낙심하거나 극단적인 생각으로 다다르면 안 된다. 인류가 종교를 만들고 신이라는 존재를 만들어 믿은 것처럼, 스스로를 속여야 한다. 우리는 태어나 축복받았고, 가정을 꾸려 오순도순 살다 죽으면 충분히 행복한 거라고. 세상에 이미 태어나버린 우리들은 어쩔 수 없이 살다 가야만 하니까 말이다.

2019. 10

김다예

잊혀진 특별한 의미

민주주의를 채택하며 마주한 자본주의는 우리 삶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사람들은 돈에 열광했다. 그들에게 돈은 더 이상 단순한 욕망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었다. 삶의 목표 그 자체, 혹은 삶의 모든 것이 되어버린 것이다. 오늘날, 사람들에게 돈은 신과 같은 존재로 자리 잡았다. 생각해보라. 개인의 모든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도록 해주며,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단번에 손에 넣을 수 있게끔 해주는 것. 이것이 신이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인가? 사람들은 점점 더 돈이라는 신에 매달렸고, 돈이라는 유혹적인 환상에 빠져갔다. 광신도가 된 그들은 사물 그 자체를 버리고 대신 돈을 쥐었다. 가치를 찾는 대신 돈을 탐했다. 돈에 뽀뽀는 하지 않았지만, 돈을 사랑한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돈을 찬양했다.

화폐, 즉 돈이란 우리가 어떤 것을 살 때 사용하는 현금이나 수표를 의미한다. 단순히 말해 욕구 충족을 위한 지불 수단인 것이다. 자본주의는 주위의 모든 것을 돈만 있으면 살 수 있게끔 시장 경제를 화폐화했다. 화폐화된 재화와 서비스들은 저마다의 가격표가 붙었다. 사과는 사과 대신 1000원이라는 가격표가, 침대는 침대 대신 50만원이라는 가격표가 말이다. 가격이 매겨짐에 따라 사물이 본래 지녔던 고유한 가치는 더 이상 주목받지 못했고, 가치는 매겨진 가격의 금액대로 지정되어 버렸다. 사람들은 가격표에 쓰인 가격만큼을 지불하며 사물의 가치에 대한 완벽한 등가물을 지불했다고 착각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자연히 사물에 내재 된 복잡하고 비교 불가능한, 고유한 가치를 점점 잊게 되었다, 모든 사물을 시장화하는 돈의 특성탓에 발생한 안타까운 현상이었다.

자본주의가 발달함에 따라 사람들은 돈 그 자체에 가치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분명 물건을 얻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던 돈을, 이제 목표로 인식하게 된 것이다. 사실 이러한 과정에는 근본적인 원인이 존재하는데, 바로 우리의 모든 욕망이 충족되는 길목에선 항상 돈이라는 다리를 거쳐야만 했기 때문이다. 짐멜의 유명한 명언 중, ‘돈은 다리일 뿐이다. 그리고 사람이 다리 위에서 살아갈 수는 없다.’ 는 말이 있다. 이 말 대로 돈은 그저 다리일 뿐이다. 목표로 가는 길에 있는 다리. 그러나 우리는 자꾸 다리만을 보며, 다리 위에서 살아가려 한다. 이제는 인지해야만 한다. 돈은 그저 목표로 가는 다리일 뿐이라고. 시선을 다리에서 떼어 내 다리 너머에 있는 진정한 우리의 목표(욕망)을 바라보아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삶의 의미와 핵심을 잃게 되는 것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돈이 우리의 삶을 획기적으로 바꿔준 것은 사실이다. 돈 덕분에 개인의 독립성과 자율성이 기능하게 되었으며, 시간적-심리적 여유가 생기게 되었고, 부를 축적할 수 있게 됨과 동시에 경제를 크게 발달시켰다. 또, 돈이 충분한 삶은 그만큼 풍족하고 여유로운 삶을 살 수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모두 돈을 원하고, 돈을 벌기 위해서 살아간다. 그러나 돈만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특별한 의미는 분명 존재한다. 사물에도, 우리의 삶에도 말이다. 이 점을 간과하며 돈 그 자체를 인생의 목표로 삼아 살아간다면 돈이 주는 공허함과 권태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곧 삶에 무의미한 싫증을 느끼게 될 것이며, 확실한 만족은 점점 더 드물어 질 것이다. 더 나아가 인간적인 노동의 고유한 가치와 기쁨이 사라져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나는 감히 단언할 수 있다. 돈만으론 절대 본질적 행복이나 만족에 도달할 수 없을 것 이라고. 결국 우리의 욕구를 최종적으로 만족시켜 주는 것은 오로지 질적인 가치뿐이니 말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억지로라도 스스로 환기시켜야만 한다. 사물에 내재된, 우리의 삶에 내재된 특별한 의미를.

2019. 11.
김다예

6월 활동 보고입니다!

먼저 중간고사 때와 마찬가지로, 간식 행사를 진행하였습니다. 스타벅스, 햄버거 기프티콘 등 학생들이 좋아할만한 것 위주로 담아보았습니다. 

일전에 기획했던 소통함 기억하시나요? 24시간 운영되는 소통함, 학우분들께서 소통함을 잘 이용해주시니 뿌듯합니다! 관련해서 다른 학우들도 궁금해할만한 내용을 추려 전체 학생에게 공유해드렸습니다~

그리고 기말고사 간식행사 이후 학생들에게 잘 배분해 드렸습니다!

마지막으로 자치회비 및 학생회비 내역을 공개하였습니다.

 

시험기간이다보니 살짝 부실했던것 같네요..

앞으로는 더 좋은 내용들 학우들과 나눌 수 있도록 노력하는 학생회의 일원이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5월 학생회 활동공유 시작합니당당

이번에는 산업공학도를 위한 교내 및 교외 프로그램을 안내해 드렸습니다!

5월쯤부터 학생회 인원의 역할 분담이 완료되었는데요, 저는 다른 3과대 한분과 함께 자료조사 부분을 맡게 되었습니다.

저 위에 써진 교내/교외 프로그램도 모두 저희가 찾고 정리한 프로그램들 인데, 

데이터-금융-오픈소스-대회-교육-어학-대외활동 등 다양한 분야를 소개할 수 있도록 노력했답니다.

(저 당시의 프로그램이라 지금은 아마 종료되었을거에요 ㅎㅎ)

저 위에 나열된 것은 간단한 항목들이고, 세부적인 내용은 뒷 슬라이드에서 상세하게 알려드렸어요.

뒷 슬라이드들도 몇개 첨부할까 하다 그냥 넘어갑니당..ㅎㅎ 

다음으로, 곧 있을 계절학기를 대비해 전공 과목에 대한 수요조사를 진행하였습니다.

그런데 저희 공과대학/소프트웨어융합대학 은.... 계절 때 전공을 거의안열어서 ㅠㅠ 하나마나 였던 것 같아요.

교수님들께서도 연구에 바쁘셔서 그러신거겠죠.. 힘내세요 교수님!

5월달은 행사가 많은 날이었습니다. 그도 그럴게, 스승의 날과 성년의 날이 같이 있었기 때문이죠! 이번 5월 15일 스승의 날을 맞이하여 한분 한분 교수님을 찾아뵙고 학생들을 대표해 고마운 마음을 담아 꽃과 편지를 전달하였습니다! 일정이 있어서 못 뵌 교수님께도 사무실 문 앞에 두는 등 꽃과 편지를 전달해 드렸습니다 ㅎㅎ 

항상 감사드립니다

5월 17일은 성년의 날이었죠. 어떤 이벤트를 해야 식상하지 않고 참여율이 높을까? 재밌어할까? 라는 생각, 그리고 올해 성년이 된 신입생만 타겟으로 두지 않고 전 학년을 타겟으로 두는게 좋겠다는 생각에 "나의 청춘" 컨셉으로 스무살, 그 당시의 추억이 담긴 내 사진을 올리는 이벤트를 진행하였습니다. ㅎㅎ 

2학기 국가장학금 안내도 해드렸습니다! 놓치면 안되지요!

저희 대학은 한 학기에 한번씩 배정된 담임 교수님과 함께 상담을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데요, 관련하여 안내를 해드렸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치회비 및 학생회비 내역을 공개하였습니다~

이상 5월 활동 공유 였습니다 :>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