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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시민으로서 :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푸른달열하나 2021. 7. 17. 08:44

작하기 앞서, 본 글의 진행 순서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처음으로 우리는 <정당의 역할>에 대해 알아볼 것입니다. 그 후, <한국의 정당>은 과연 정당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지에 대해 알아볼 것이고, 그들의 만행으로 인한 <보수적 민주화>, <조숙한 민주주의>, <신자유주의적 민주주의로의 쇠태>를 알아볼 것입니다. 마지막으로는 이런 <한국 민주주의가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할까?>에 대해서 논의해본 후 간단한 느낀점과 함께 글을 마무리 짓도록 하겠습니다.

 

 

정당의 역할

우선 정당으로써 마땅히 수행해야 할 역할에 대해 논의해보고자 합니다. 정당은 사회적 갈등과 균열을 파악해 대변하고, 여러 논의를 대안으로 조직하는 일을 합니다. 사회적 갈등을 정치의 틀 안으로 가져와 진지하게 다뤄야 할 공동체 전체의 문제로 전환하여 의제로 만드는 것이 바로 정당의 역할입니다. 특정 정당의 이익에 도움이 되는 갈등만이 아닌, 갈등을 폭넓게 동원함으로써 다루는 갈등의 범위를 넓히는 역할을 할 때 비로소 정당이 민주주의에 기여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각 정당의 대안을 조직해 서로 경쟁하고 최선의 대안을 찾아가며, 궁극적으로 사회적 갈등을 완화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정치 기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민주주의를 채택한 정치 체계에선 정당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고, 따라서 정당이 제 역할을 하지 못 할 경우엔 민주주의는 위기에 처할 수밖에 없습니다. 당연히 그런 사회는 질적으로도 발전할 수 없겠죠?

 

한국의 정당

그렇다면 한국의 정당은 어떨까요? 안타깝게도 해방 후, 우리나라의 정당을 이끄는 정치 엘리트들은 광범위한 사회적 요구와 개혁 의제를 무시한 채 본인들의 이익 실현에만 몰두했습니다. 갈등을 사회화하긴커녕, 명백히 드러난 갈등을 무시하는 것은 기본이었고, 그저 자신들의 정치적 자산에 유리한 갈등만을 동원하고, 갈등을 사유화하며, 정치를 시민으로부터 분리했습니다. 이렇다 보니 한국 정치는 시민들의 공분이 대상이 되었고, 사회적 불만이 점점 쌓인 시민들 또한 애써 정치판을 무시해버리게 되었습니다. 최근에도 볼 수 있는 투표율의 극명한 하락은 정치 엘리트들에게 무시 받는 유권자들의 절망적인 항의라고 볼 수 있습니다. 투표를 하지 않는 방법을 통해 그들의 불만을 표출한 것입니다. 이런 악순환 탓에 한국 정치 대표 체제인 정당 체제는 지속적인 저발전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보수적 민주화

다만 이렇게 대중의 참여가 결여된 상태에서도, 국가 형성 – 산업화 – 민주화에 이르기까지의 거시적인 사회 변화는 이루어졌습니다. 대중을 무시한 채 정당의 엘리트들끼리 정치 개혁을 이룬 것입니다. 이를 ‘수동 혁명’ 또는 ‘보수적 민주화’라고 부릅니다. 사실 대중을 무시하고 본인들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정치 세력은, 집권 말기에 엄청난 대중적 비판에 직면하며 새로운 정당이 등장하는 것이 보통의 경우입니다. 하지만 기존 정치 세력이 압도적으로 지배적인 우리나라의 경우엔 보수적 민주주의의 틀을 깨는 개혁적이고 진보적인 대안이 등장하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이러한 한국의 보수적 민주화의 틀을 잡는데 주요한 역할을 한 것은 바로 거대 언론입니다. 거대 언론은 정당의 편협한 갈등 범주 내의 무의미한 대안 재생산을 가능케 해주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정당과 언론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니 사회의 중요한 갈등과 균열이 표출되지 못한 채 억눌러지고 있고, 그 결과로 시민의 요구와 정치의 괴리감은 점점 커져만 가고 있습니다.

 

조숙한 민주주의

과거 재벌이 지배하는 경제구조, 거대한 국가 관료제 등의 특징을 갖고 있던 우리나라는 급격한 변화를 맞았습니다. 민주화를 맞게 된 것입니다. 다만, 이러한 권위주의가 충분한 준비없이 너무나 급진적으로 개혁된 탓에 온전히 민주화되었다고는 볼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이를 ‘조숙한 민주주의’라고 부릅니다. 조숙한 민주주의는 한국 사회에 구조화되어 정착되었고, 이는 보수 편향적 정당 체제를 만들었습니다. 지금도 어김없이 다수의 정당 엘리트들은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는 책임감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민주주의는 빈약한 정치적 수사에 불과해 보입니다. 이런 안락한 보수주의에 푹 빠져있는 한, 한국 정치는 더 이상 발전할 수 없을 것입니다.

신자유주의적 민주주의

민주화 이후, 새롭게 등장한 신자유주의 이념과 논리는 전 세계적인 영향력을 뻗쳤습니다. 우리나라 또한 사회경제정책 분야에서 더 신자유주의적이고 시장 근본주의적인 정책 노선을 추구하게 되었습니다. 다만 10년이 안 되는 짧은 기간 동안 정책 기조가 급진적으로 취해진 탓에,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등의 모든 구조가 불완전한 상태로 끝맺어지게 되었습니다. 또, 전 세계의 나라들은 각국의 경제 사정에 맞추어 적절히 변형시켜 신자유주의를 수용한 반면, 한국에선 그대로 강하게 밀어붙이는 경제 정책을 펼쳤습니다.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을 내세워 성장 지상주의를 강력히 기능하게끔 했으며, 민주주의와 병행 발전시킬 수 있었던 또 다른 가능성은 무시되었습니다.

 

신자유주의적 민주주의로의 쇠태

안타까운 점은 ‘신자유주의적 경제 정책의 외적 제약 안에서 한국의 사정에 맞게 변형 및 발전시켰으면 어땠을까’하는 점입니다. 신자유주의의 틀 안에서도 사회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정책적 보완을 할 수 있었을 테고, 다른 정책 분야에서도 현실에 상응하는 대안을 모색하고 발전시키는 것은 충분히 가능했을텐데 말입니다. 이와같이 신자유주의만을 밀어붙인 행위가 결국 실질적인 경제적 민주화의 실패로 이어졌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절차적 수준에서의 민주화 발전은 어느 정도 이루어졌지만, 사회경제적 수준에서의 민주화는 퇴보했습니다. 이렇게 성장 지상주의 정책을 최우선으로 놓는 동안, 한국의 시민들은 여러 개의 계층으로 분화되었습니다. 분명한 것은 오늘날 한국의 민주주의는 사회의 계급구조와 분열을 완화하는 체제로의 기능을 상실했다는 것입니다.

 

민주주의의 제 기능을 위해

그렇다면 한국의 민주주의가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선 어떠한 요소들이 필요할까요?

우선 서민층이나 노동이 정치과정 속으로 들어와야 합니다. 이들의 불만이 표출되며 공동체 모두와 다루는 갈등의 범위가 넓어지고, 그럼으로써 갈등이 해소되는 민주주의적 사회 통합을 이루어야 합니다. 정당은 사회적 갈등에 집중해 자신들을 위치시키고, 대중에게 맞는 정치적 대안들을 동원해야 합니다. 본인들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정당이 아닌, 제대로 된 이념과 정책을 추구하는 대중정당이 되어야 합니다. 또, 정치 공동체의 규모가 커질수록 갈등의 범위를 억압하고 무시하는 것으론 체제를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을 인지하고, 정당 체제의 보수적 폐쇄성에서 벗어나 다양한 사회적 요구를 반영할 수 있게끔 대표 체제를 개방해야 합니다. 만일 기존의 정당이 사회에 쌓여있는 갈등들을 무시할 경우, 쉽게 새로운 정당이 들어설 수 있어야 합니다. 정당 간의 경쟁이 의미를 띄게 되어야 정치가 언론에 종속되는 것도 지양될 것입니다. 이렇게 할 때 비로소 대중 주권이 실현될 수 있을 것이며, 민중에게 신뢰받는 정치, 민주주의라고 부를 수 있는 정치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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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 글을 준비하며 그동안 관심은 있으나 잘 알지 못했던 민주주의에 대해 알게 된 것 같아 기쁩니다. 사실 우리나라 정도면 민주주의가 참 잘 구현되어 있는 것 아닌가 하고 평소 생각했었는데, 자료를 찾으며 내가 아직 정치에 관심이 없긴 없었나보다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내 인생 살기에 바빠 정치와 경제는 뒷전으로 해두고 신문도 잘 읽지 않던 제가 새삼 부끄러웠습니다. 이제는 나도 방관만 하지 말자는 생각에 앞으로는 뉴스나 경제 신문 같은 것들도 종종 읽고, 또 간간히 내용도 요약해보려 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한 사회의 중심적 갈등들이 정당을 통해 전국화될 때가 바로 낡은 정치적 행태들이 변화하게 될 순간입니다.

 

2019.11

김다예